[소년중앙/소중리포트] 초콜릿·커피·타월·티셔츠…’제값...
중앙일보 성선해 기자 승인 2021.03.15
(왼쪽부터) 오주연
장재인 소중 학생기단이 공정무역 시스템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살펴봤다. 2018년 기준 약 3만5000여 종의 공정무역 마크 부착 제품이 145개국에서 판매 중이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는 많은 사람이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초콜릿·사탕의 원료는 어디서 왔을까요. 초콜릿의 원료 코코아의 약 60%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공급됩니다. 사탕의 원료인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드는데, 브라질·인도·필리핀·쿠바 등 개발도상국 농부들이 주요 생산자예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지동훈(오른쪽) 대표에게 공정무역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초콜릿·사탕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달콤한 간식이죠. 하지만
코코아·사탕수수 생산자 중 상당수는 노동의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요. 코코아 주요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곳의 코코아 가격은 기후 변화와 정치적 격변 때문에 몇 년 동안 오르락내리락했어요. 농부들은 한 해 수익을 예측할 수 없기에 미래 계획도 세울 수 없었죠. 당연히
품질 향상을 위한 시설 투자, 생활 환경 개선, 지역 사회
성장에 쓸 여유 자금도 부족했어요.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노동에 동원됩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2018~2019년
아동 노동자 156만 명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코코아 농장에서 일했고, 그중 148만 명(95%)은
위험한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밝혀졌죠. 이런 상황은 코코아뿐만 아니라 사탕수수·커피·바나나·목화 등
국제 시세 변동 폭이 큰 작물을 재배하는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비슷하게 벌어집니다.
오주연·장재인 학생기자가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에서
마련한 E-learning 강의 1호 수강을 완료한 뒤 지동훈(중앙) 대표에게 수료증을 받았다.
내가 맛있게 먹던 초콜릿과 사탕에 이렇게 씁쓸한 비밀이 숨어있다니, 다소
충격적이지 않나요. 다행히도 이들의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제공하는 무역 시스템이 현재 운영 중입니다. 기존 자유무역에 대한 대안적 형태로 나타난 공정무역(公正貿易·Fair Trade)이죠. 장재인·오주연 학생기자가 서울시 중구에 있는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 한국사무소를 찾아 공정무역에 대해 알아봤어요. 지동훈 대표와 강소현 대리가 이들을 맞이했죠.
국제공정무역기구는 1997년 전 세계 비영리 단체들이 무역 구조를
개선하고자 모여 만든 비영리 국제기구예요. 아프리카·남미·아시아 72개국에
있는 1822개 조합 소속 약 170만 명의 생산자가 소속됐죠. 한국사무소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2011년 설립됐어요.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정무역 마크가 바로 눈에 띄네요. 전
세계 공정무역 제품의 90~97%에 부착된 마크로, 가게에서
본 적 있는 소중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국제공정무역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약 3만5000여 종의 공정무역
인증 마크 부착 제품이 145개국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죠.
지동훈(가운데)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 대표가 장재인(왼쪽)·오주연 학생기자와 함께 공정무역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정무역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지 대표·강 대리와 마주
앉은 재인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기존 불공정한 무역 체제로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농민과 노동자에게 국제 시세를 상회하는 정당한 값(최저 금액)을
지불하고, 지역사회의 취약점을 개선하는 추가 장려금(프리미엄)을 지급하는 글로벌 시스템이자 소비 운동이에요.”(지)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가 공정무역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3월
말~4월 초 선보일 예정인 E-learning 강의를 소중
학생기자단이 1호 수강자가 되어 살펴봤습니다.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에는 공정무역의 정의·역사·효과 등 기본적인 내용이 담겼죠.
재인·주연 학생기자가 공정무역 마크가 프린트된 셔츠로 갈아입자 공정무역 원료로 만든 초콜릿과 음료가 앞에 놓였습니다. “옷도 공정무역 상품에 포함되는지 몰랐어요.” 주연 학생기자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죠.
“국제공정무역기구의 공정무역 인증 시스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원료 인증으로, 공정무역의 국제적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설립된 감사기구(FLOCERT)에서 이를 담당하죠.
FLOCERT는 공정무역 시스템 참여 생산자·수출업자·유통업자·제조업체에 ID를 발행해요. 이를 통해 공정무역 원료 취급 및 활용과 연관된 모든 단계를 모니터링할 수 있죠. FLOCERT는 공정무역 원료를 구입하는 제조업체·소매업자들이 생산자에게 최저 가격을 지불하는지도 감시합니다. 이를 통해 생산자들이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을 받는 상황을 방지해요.”(강) 공정무역 시스템으로 생산 및 유통된 제품에 공정무역 마크를 부착하려면
‘라이센시’를 통과해야 해요. 제품 전면에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잘 보이는지, 후면에 공정무역 원료 함량을 정확히 기재했는지 꼼꼼히 살피는 절차죠. 라이센시는
각 국가 국제공정무역기구 사무소 관할이에요.
지동훈 대표(오른쪽)가
소중 학생기자단과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 내부에 마련된 공정무역 제품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공정무역의 개념과 인증 과정을 배운 소중 학생기자단이 국내외에서 살 수 있는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을 살펴봤습니다. 대표적인 공정무역 제품으로 알려진 초콜릿·설탕·커피 외에도 에코백·화장 솜·타올, 심지어 유명 브랜드의 주얼리도 공정무역 마크를 달고 있었죠. “소규모
금 광부들도 공정무역 시스템의 일원이에요. 이들은 길고 복잡한 금 유통 사슬의 끝에 서 있기에, 제값을 받고 금을 판매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공정무역을 통해 광부들은
최저 가격과 프리미엄을 보장받게 되죠.”(지)
대표적인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바나나·코코아 외에도 축구공·귀금속도 공정무역 시스템에서 생산된다.
“최저 가격과 프리미엄은 공정무역 시스템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예요. 최저 가격은 공정무역에 가입한 생산자 조합이 제품을 거래할 때 받는 최저 원룟값으로, 국가·원료·제품·형태별로 매겨지는 가격이 달라요. 프리미엄은 원료
구매자가 농산물이나 노동에 대한 대가 외에, 삶의 질과 지역사회 개선에 투자할 수 있도록 생산자에게
주는 추가 장려금이에요. 교육·사회 기반 시설·의료 혜택 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예를 들어 1톤당 코코아는 약
240달러, 커피는 약 440달러, 바나나는 22.5달러의 프리미엄을 지급받을 수 있어요.”(지)
UN에서 빈곤과 기아 종결을 위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 목표. 국제공정무역기구는 이중 8개에 초점을 맞춰 활동한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소중 친구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UN-SDGs)라는 단어를 들어봤나요. 빈곤을
끝내고, 불평등과 싸우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으로 2016년 9월
UN 총회에서 채택한 17가지 글로벌 목표입니다. 국제공정무역기구는 17개의 SDGs 중 빈곤 퇴치, 기아
종식, 성 평등,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 기후 행동, 목표 달성을 위한 파트너십 등 8개에 초점을 맞춰 활동합니다. 앞서 언급한 최저 가격과 프리미엄은 빈곤 퇴치, 기아 종식에 기여하죠. 공정무역 인증 조합에서는 성적으로 위협적이고 착취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규칙을 명시하고, 여성 리더 양성에 힘쓰면서 성 평등에도 이바지합니다. 또 만 15세 미만 어린이는 고용할 수 없죠.
공정무역 생산자 조합에 가입한 생산자들은 최저가격과 프리미엄을 지급받아 지속가능한 생산을 실현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뿐만 아니라 중간거래자·제조업자·판매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이로운 시스템이에요. 공정무역 마크가 붙은 제품은 FLOCERT ID를 통해 생산부터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기업은 제품 제조 과정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죠. 사회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이고요. 소비자는
공정무역 마크 부착 여부를 확인해 안전한 먹거리와 제품을 손쉽게 만날 수 있어요.”(지)
[공정무역 프리미엄 데이터 기초(2016-2017)]
조합에 소속된 농부와 근로자들은 공정무역 프리미엄(추가 장려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들 자신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다. 국제공정무역기구는
그들의 선택이 SDGs를 어떻게 지원하는지를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공정무역 상품이 최저 가격과 프리미엄 때문에 일반 제품보다 비쌀 것이라고 여기기도 해요. “최종 소비자가는 얼마나 많은 중간단계를 거쳤는지에 따라 결정돼요. 예를
들어 같은 원료를 써도 수입 절차를 거쳤거나 마케팅에 많은 예산을 쓴 제품은 그렇지 않은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죠.
즉, 원료에 대한 최저 가격과 프리미엄이 소비자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지)
공정무역 시스템에 가입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규모 목화 농부들이 만든 원료로 활용해 생산된 에코백과 타월, 목욕가운.
공정무역 마크가 붙은 제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전 세계 공정무역 시장 규모는 약 12조6000억원(2018년 기준)이며, 매년 약 10~15% 성장 중이에요. 국내 공정무역 시장 규모도 매년 약 20~30% 성장하고 있죠. 제품의 안정성, 윤리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뜻이죠. 여러분도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해 윤리적 소비에 동참하고, 제3세계 생산자를 돕는 건 어떨까요.
공정무역 마크의 의미
공정무역 마크는 사람이 한쪽 팔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어요.
이는 공정무역 생산자들의 희망을 의미하며, 전 세계 소비자들의 공정무역에 대한 지지와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의 삶의 의지를 내포하죠. 파란색은 가능성을, 연두색은
성장을 뜻합니다. 검은색 배경의 마크는 커피·바나나처럼 재료의
100%가 공정무역 원료이거나, 쿠키·아이스크림·초콜릿 바처럼 제조 과정에서 공정무역 원료를
최대한 사용한 복합제품에 부착해요. 흰색 배경의 FAIRTRADE
Sourced Ingredients(FSI)라 불리는 공정무역 마크도 있습니다. 이는 최종
제품의 성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회사가 하나 이상의 특정 공정무역 원료를 조달해 사용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의미해요.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장재인(경기도 보평중 2)·오주연(서울 숭인중 1)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공정무역이 ‘생산자의 노동에 합당한 돈을 주고 물건을 사 오는 무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취재하며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을 보고, 먹고, 입어보며 공정무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했습니다. 공정무역 제품이 비싸다는 건 편견이라고 해요. 그동안
왜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의 물건만 구매했었을까요. 취재 후 조금 더 많은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재인(경기도 보평중 2) 학생기자
평소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아 국제공정무역기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기회를 얻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하고 여러 나라의 제품이 있어서 놀라웠어요. 또
지동훈 대표님과 인터뷰하면서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새로웠습니다. 옷도 공정무역에
포함되는 걸 처음 알았어요. 국제공정무역기구 한국사무소를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공정무역은
이런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 큰 배움과 자신을 얻었습니다.
오주연(서울 숭인중 1)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