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2017-03-16 11:34:09

[김종철 기자의 퓨전 리더십&롤모델] 공정무역 (Fair Trade)

MBN에서 ‘귀농 풍경’이 담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감귤 큰 박스에 담긴 가격이 고작 3200원이라는 사실. 트럭에 싣고 간 22박스를 모두 합쳐 손에 쥔 금액은 불과 7만원. 그러자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웠던 귤을 내준 70대 중반의 한 촌로(村老)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랜 수고가 들어간 과일이 이렇게 밖에 대접을 못받나?” 모 주스 제조회사가 제주도에서 감귤을 일괄 수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랴부랴 내다 팔다가 일어난 일이다. 도시에서는 이보다 몇 배나 적은 분량의 가격이 1만원에 육박하는데, 도대체 기업들은 얼마나 많은 이윤을 취하는 것인가. 

배추가 금값이었던 지난 9월. 도심 주부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던 배추 한 포기는 1만원 안팎에 거래됐다. 주산지인 강원도 산골에서 고작 1천원에 사들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 물론 농민이 농사를 망치더라도 일정하게 고정 수입을 올리도록 한 ‘계약재배’ 영향도 있지만, 올해처럼 배춧값이 급등한 상황에서는 농민에게 돌아가는 추가적인 수입이 전무하다. 아무래도 유통과정에서 붙는 중간마진이 적지 않은 탓인데, ‘상식선’을 뛰어 넘는 이익취득은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다행히 배추 출하가 본격적으로 진행중인 지금은 포기당 가격이 2천원대로 떨어져 주부들도 한 시름 덜었지만, 여전히 생산단계와 소비단계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이 현저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커피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에 있는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이다. 그러나 식물로서 재배되기 시작한 건 중동 지역인 예멘의 메카에서 서기 575년경에 처음 이뤄졌고, 약 1000년 동안 커피는 메카의 특산품이었다. 이후 식민주의 열강에 의해 지구촌 각지로 퍼져 나갔는데, 17세기 초반 세계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인들은 산업스파이까지 동원해 커피나무를 훔쳐 자국에서 배양했다. 네덜란드는 이를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등 동인도 제도의 섬 지역에서 대량 재배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커피의 생산과 출하, 판매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무역이 자행되고 있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커피의 인기만큼이나 과거 식민지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겹쳐지면서 ‘악마의 음료’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강대국 기업들은 산지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헐값에 원두를 사들였고, 소비자에게는 비싼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에서 수입 커피 한 잔의 가격이 3~5천원에 달하는데, 우리가 음미하는 그윽한 향기의 기호품에는 이러한 농민들의 피와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있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전 세계에 공정무역 바람이 불고 있다.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제3세계 농가에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무역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커피와 초콜릿, 설탕, 홍차, 면화를 꼽을 수 있는데, 석유 다음으로 거래가 활발한 커피는 작황 상황에 따라 가격의 폭락과 폭등이 심한 편이다. 따라서 대부분 빈민국에 속한 커피 재배 농가는 선진국의 커피 확보를 위한 원조 또는 투자라는 미명아래 불평등한 종속 관계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왜곡 구조에 반대해 유럽에서는 정당한 가격으로 거래해 적정한 수익을 농가에 돌려주자는 '착한 소비'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바로 공정무역의 시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정무역 커피가 처음 등장한 곳은 네덜란드이다. 과거 선진국들은 대량 구입을 빌미로 정상가격의 절반 이상을 깎아 큰 이익을 취했고, 뒤늦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싸게 사지 말고 제 값 주고 구매하자’는 공정무역 운동이 벌어졌다. 소비자들은 특히 커피 뒤에 숨은 환경문제와 노동문제 등에 주목했고, 다행히 이런 운동이 결실을 거두면서 농민들의 삶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 즉 공정무역은 이런 구조적인 빈곤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세계적인 시민운동이자 비즈니스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관광 분야에서도 공정무역에서 따온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를 테면 ‘착한여행’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바로 관광객과 여행지 국민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여행을 뜻한다. 즉 관광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씩 성장하지만, 관광으로 얻어지는 이익의 대부분은 G7국가에 속한 다국적 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공정여행을 통해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현지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구입하는 등 그 곳을 살리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즐기는데 치우친’ 여행에서 비롯된 환경 오염과 문명 파괴, 낭비 등을 반성하고 어려운 나라의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2000년대 들어 유럽을 비롯한 영미권에서 추진되어 왔다. 이를 본따 국내에서도 농·산·어촌 등을 둘러보며 봉사와 관광을 곁들인 공정여행 상품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테면 어느 특정지역에 대형 관광버스가 오가며 관광객들을 대규모로 실어나르기보다는, 적은 인원이지만 장기체류를 통해 직접적인 소득증대나 주민을 충분히 배려하는 개별관광객 유치가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자본주의에 입각해 기업 등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면 대다수 주민들은 불법주차나 무단침입, 임대료 상승 등 부정적인 측면에 노출될 수 있는 반면 경제적 혜택은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오늘날 세계는 승자독식(勝者獨食) 현상이 만연해지면서 빈부격차 등 양극화가 심화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또한 나라별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보호무역주의 등이 교묘하게 기승을 부리고 극단적인 성향의 정치 지도자들이 나타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부 내전에 시달리는 국가의 민초들은 정착지를 마련하지 못한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한 생활에 방치되어 있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하게 사는 것이 소망일진대 갈수록 우리에게 등장하는 현상들은 이에 역행하는 광경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공정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원칙과 올곧은 자세가 절실해지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게 그리 어려운 것일까? 이를 차근차근 실천하려면 각자 작은 욕심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자. 

기사 원문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6&no=836878